잡초뿐이던 폐가, 사람 냄새 나는 북카페가 되기까지
“버려진 집에 책과 커피가 들어오자,
사람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무너진 집, 두 사람의 꿈이 스며들다
몇 년 전 어느 봄날, 우리는 시골 외곽의 한 폐가 앞에 섰습니다.
지붕은 움푹 꺼지고, 마당은 잡초로 가득했으며,
바람이 창문 틈으로 휙 소리를 내며 드나드는, 말 그대로 ‘버려진 집’이었죠.
처음 그 집을 마주했을 때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이걸 정말… 고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낡은 공간이 우리 눈에는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햇살이 비치고,
낡은 기둥 옆에 책장이 늘어서며,
마당 한 쪽에선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장면이요.
우리는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 폐가를 사람 냄새 나는 북카페로 만들자.”
그렇게 두 사람의 손으로 주말마다 한 칸씩, 한 벽씩 고치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많이 돌아간 리모델링의 길
우리가 처음 한 일은 정리였습니다.
집 안에는 버려진 가구, 곰팡이 낀 이불, 무너진 장롱과 깨진 유리창들이 가득했죠.
하루 종일 쓰레기를 정리해도 끝이 없었고,
그 와중에 쥐가 튀어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이 집을 정말 북카페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마음의 의심이었습니다.
리모델링은 철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벽지는 곰팡이로 절어 있었고, 바닥은 반쯤 썩어 있었습니다.
기초를 다시 다지고, 전기와 수도를 처음부터 새로 놓았죠.
특히 천장은 목재로 바꾸고 노출형 조명을 달면서,
카페 느낌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산은 늘어나고,
생각보다 공정은 더뎌졌으며,
직접 고친 부분은 예상외로 다시 손봐야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간에 책과 커피가 함께하는 따뜻한 풍경을 매일 같이 상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책을 놓고, 사람을 맞이할 준비
공사가 끝나갈 무렵, 공간이 점차 형태를 갖추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기존 2칸 방을 트고 천장을 높이며 탁 트인 책 공간을 만들고,
한쪽 벽에는 책장을 직접 짜서 중고 책과 기증받은 책을 정성껏 채워 넣었습니다.
책만 있는 공간은 조금은 조용하지만,
커피가 함께하면 사람들이 머물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고 기계를 들이고,
소박하지만 진심 담긴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도록 작은 카운터를 마련했습니다.
주방이 있던 자리는 제빵 작업대와 세척 공간으로,
창문 옆자리는 햇살이 잘 드는 1인 독서 좌석으로 바꾸었죠.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느낌이었습니다.
낡은 기둥은 그대로 두고, 벽은 흰색과 목재 톤으로 마감하고,
천장엔 조명을 따뜻하게, 음악은 살짝 낮게 흘러나오게 했습니다.
바로 그 감성이 이 폐가를 ‘공간’으로 바꾼 핵심 요소였습니다.
북카페는 공간이 아닌 이야기의 집합체
이제 우리 북카페는 마을의 작은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웃들은 고구마를 들고 와 책을 빌려 가고,
지나가던 여행자들은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을 읽고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떠납니다.
이 공간은 단순히 책과 커피가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가 스며드는 쉼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폐가를 북카페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말렸습니다.
“차라리 새로 짓지, 왜 저걸 고쳐?”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낡았기 때문에 더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집은 벽마다 사연이 있고,
문 하나, 창 하나도 손수 고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단순한 사업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아끼는 장소이자, 마을과 연결되는 창구가 되었죠.
북카페의 꿈은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책을 드리고, 작은 모임을 열고,
때로는 아이들의 그림 전시회도 열며
이 폐가였던 공간을 조금씩, 천천히, 사람들의 기억으로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북카페를 시작하고 나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굳이 폐가였나요?”
“깨끗한 공간에서 시작해도 되지 않았나요?”
사실 그 말도 맞습니다.
깨끗하고 관리 잘된 곳을 임대해 시작하면 더 수월했겠죠.
하지만 우리가 고른 이 폐가는 단지 ‘버려진 건물’이 아니라,
가능성을 품은 ‘빈 그릇’이었습니다.
벽에 스며든 시간의 얼룩,
기둥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손자국,
마당에 자라난 들풀까지도
우리에겐 모두 이야기가 되고,
공간의 정체성이 되었죠.
우리는 이 집을 ‘없던 것을 새로 만든’ 게 아닙니다.
잊힌 것을 다시 꺼내고,
낡은 것을 살려내며,
사람을 맞을 준비를 시킨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북카페에는 신축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도와 향기, 기억의 결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이곳이 지역과 다시 연결되는 창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엔 마을 어르신들이 조심스레 문 앞에 서성이다가,
이제는 고구마를 삶아 함께 나누고,
동네 아이들은 숙제하러 와 책을 읽고 갑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우리는 단지 카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 마을의 일부가 되었구나 하고 실감합니다.
북카페라는 공간은 절대 커다랗지 않습니다.
책장 몇 개, 커피 향 조금, 테이블 몇 개.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그 어떤 건물보다도 넓고 깊습니다.
우리의 리모델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내부 책장 배치도, 작은 책 큐레이션도,
그리고 때로는 비 오는 날 새는 창문 하나까지
하나하나 손보며,
‘완성보다는 성장’을 택하는 공간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작은 인사를 나누며 나갑니다.
그 모습이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 풍경입니다.
버려졌던 폐가 한 채가
다시 사람을 부르고,
이야기를 품고,
하루하루 작은 기억을 쌓아가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이 공간을 시작한 이유이고,
이곳을 계속 지켜나가는 힘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어딘가에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첫 삽을 떠보세요.
어쩌면 당신이 지금 스쳐 지나치는 허물어진 공간도,
내일은 누군가의 쉼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에겐 아직 더 채워야 할 책이 많고,
나눌 이야기도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 앉아 줄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버려졌던 집,
그곳에 이야기를 심으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게 공간의 기적이고,
리모델링의 진짜 목적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