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폐가 리모델링 실전 사례

버려진 폐가를 고쳐 살아가듯, 어르신들과의 서먹한 관계도 천천히 손 보고 다독이니 결국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같이의-가치 2025. 7. 3. 17:28

“마을 어르신과 티격태격… 결국 친구가 되었습니다”
“시골살이 1년 차, 다투고 웃고 화해하기까지”

내가 고친 폐가, 이웃 어르신들과 부딪힌 시골살이 첫 해, 그리고 화해




낭만의 시골살이? 현실은 ‘첫 충돌’
기대했던 평화, 뜻밖의 불편함

 


서울살이의 분주함에 지쳐 ‘시골살이’를 결심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갑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만 해도,
마당엔 꽃을 심고, 새소리 들으며 책을 읽고,
이웃과 정다운 인사를 주고받는 ‘슬로우 라이프’가 펼쳐질 거라 믿었죠.

하지만 막상 이사 첫 달부터 현실은 달랐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저를 유심히 쳐다보셨고,
며칠 지나자 직접 집을 찾아오셔서
“마당에 잡초가 너무 많다” “담장 옆은 마을 길인데 관리 좀 해달라”
말씀하시더군요.

처음엔 ‘괜한 참견 아닌가?’ 싶었지만,
계속되는 지적에 점점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된 새댁에게
마을 규칙을 강요하듯 다가오는 모습이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첫 충돌은 시작됐고,
서로의 말은 점점 거칠어졌습니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시골에선
하루아침에 벌어졌습니다.

 


갈등의 골 깊어지다
말 한마디의 무게, 더 무거운 시골 인심

 


어르신들과의 마찰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마당 정리를 하던 중
이웃 어르신 한 분이 또다시 지적하시길래
무심코 “도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안 살아요”라고 말했죠.

그 순간, 어르신 표정이 굳어졌고
그 이야기는 삽시간에 온 마을로 퍼졌습니다.
“새로 온 젊은 사람이 예의가 없다더라.”
“자기들만 잘났다고 한다더라.”

마을 장터를 가도, 마주쳐도 인사 없이 지나치는 이웃들.
가벼운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벽을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며칠 밤을 잘 못 이루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잘못했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시골의 문화, 공동체의 룰을 몰랐고
그 속에서 내 기준만 내세웠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조용한 화해의 시작
인사, 도움, 그리고 열린 마음

 


갈등을 푸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에 꼬인 관계가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우선 저는 인사를 바꿨습니다.
단순한 “안녕하세요” 대신
“어르신, 오늘 날씨 참 좋네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세요?”
마음을 열어 진심을 담아 건넸습니다.

그리고 한 번은
어르신 댁의 고구마 순 다듬기를 돕게 됐습니다.
어색함 속에서도 손을 맞대고 일을 하다 보니
어르신 한 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습니다.

“처음엔 우리도 몰랐어. 도시 사람들하고 우리가
참 다른 줄… 근데 같이 일하니까 사람 사는 건 비슷하네.”

그날 저는 처음으로 웃으며
동네 어르신들과 고구마 순을 나눠 먹었습니다.
그 순간이 이 마을에서의 첫 ‘진짜 식사’였던 것 같습니다.

 


갈등에서 꽃 핀 정(情)
어르신들은 내 삶의 이웃이 되었다

 


이제는 그날의 일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어르신들은 마을 잔치 때면
저를 가장 먼저 부르시고,
텃밭 농사 팁도 아낌없이 나눠주십니다.

그들과 티격태격하며 배운 건
시골살이는 ‘낭만’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고, 존중하며
천천히 관계를 쌓아가는 인내의 삶이라는 겁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시골살이 초보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내 기준만 내세우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웃 어르신들과
천천히 길을 맞춰가는 중이죠.

무엇보다도 이 마을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람은 결국, 밥 한 끼와 웃음 한 번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이제 비 오는 날이면
어르신들이 담장 넘어 “비 조심하라”며 고구마를 던져주시고,
나는 그 답례로 텃밭에서 키운 상추를 나눕니다.

시골살이 첫 해, 갈등과 화해를 지나며
나는 비로소 진짜 ‘이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며 – 낯선 곳에서 이웃이 되어가는 길


시골살이 첫 해, 저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거리’였습니다.
도시에선 각자의 집 문을 닫고 살면 그만이었고,
이웃과는 가벼운 인사 정도만 오가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시골은 달랐습니다.
이웃과의 거리가 곧 내 삶의 편안함과 직결됐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일상이 필수였습니다.

처음엔 그 점이 참 버거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하기도 했고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간섭을 받아야 하나,
왜 내 마당의 잡초까지 신경 써야 하나,
마을 규칙이 뭐길래 내가 맞춰야 하나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갈등을 겪고, 화해하며 알게 됐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남의 일’에도 참견을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 한마디 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곧 오래도록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방식이라는 걸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만의 틀에 갇혀 있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조금만 먼저 인사하고,
조금만 먼저 다가가고,
조금만 더 여유 있게 마음을 열었다면
갈등이 아니라 우정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돌이켜 보면, 이곳에서의 첫해는
내가 ‘시골살이’의 겉모습만을 꿈꿨던 시기였습니다.
꽃 피는 마당, 고즈넉한 풍경, 한가로운 여유.
하지만 그 이면엔 분명히
사람과 사람이 함께 부딪히고 맞춰가는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있었죠.

이제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짜 시골살이의 낭만은
그런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요.

지금도 저는 가끔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마주 앉아
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웃습니다.
그들이 제게 처음 했던 그 ‘따끔한’ 말들도
이제는 웃으며 들을 수 있습니다.
서로 어색했던 첫해를 지나
우리는 천천히, 진짜 이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시골살이를 시작하며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사람들도, 이곳의 공기도,
결국 따뜻하게 품어줄 거니까요.

시골살이에서 진짜 중요한 건
집도, 풍경도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