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 다시 피어난 공간,
그리고 한 사람의 삶”
시간에 버려진 폐가와의 첫 만남
산골 마을 끝자락, 잡초가 무성한 길을 지나 마주한 집 한 채. 처음 봤을 때, 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모습이었다. 지붕은 내려앉고 기와는 깨져 있었으며, 외벽은 갈라져 비와 바람을 그대로 들이고 있었다. 창문은 모두 깨졌고, 나무로 된 문짝은 기둥에 대충 기대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지 오래된 듯, 집 전체가 짙은 습기와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집 앞에 서 있었다. 폐허의 공기 속에서 묘한 온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창가에 남은 빛바랜 커튼 조각, 부엌 벽면에 남은 낙서, 마당에 홀로 핀 들국화 한 송이가 이 집의 시간을 속삭이는 듯했다.
“누군가는 이 집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누군가가, 나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단지 ‘정리나 좀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이 집을 정말 ‘되살려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무너진 벽에 벽돌을 한 장 올리는 것이었다.
벽돌 한 장, 그 위에 얹힌 의지
공사를 시작한다고 해서, 거창한 장비나 인력은 없었다. 혼자서, 혹은 가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아주 천천히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철거부터 했다. 쥐가 파놓은 구멍을 메우고, 젖은 천장을 드러내고, 무너진 돌담을 허물었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곰팡이, 벌레, 축축한 땅의 냄새는 집이 보내는 첫 번째 경고였다.
그러나 예상외로 나를 놀라게 한 건, 집의 ‘뼈대’였다. 나무 기둥 몇몇은 아직 단단했고, 벽돌 일부는 물만 닦아내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무너진 벽 중 한 면을 골라 벽돌을 하나씩 다시 쌓아 올리기 위해 시작했다. 시멘트와 모래를 섞는 비율도 모르던 시절, 처음엔 쌓았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 5장씩, 벽돌을 쌓았다. 시간이 흐르자 손에 감각이 붙었고, 시멘트가 마르는 속도도 눈으로 짐작하게 되었다. 그 느림이 오히려 좋았다. 노동과 고요, 실수와 발견이 어우러진 그 시간은 단순한 복원을 넘어 내 마음을 다잡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옆집 할아버지가 손수레를 끌고 와 낡은 기왓장을 몇 장 건넸다. “이거, 예전에 이 집에 쓰던 거야. 혹시 쓰일지 몰라서.” 그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이 집은 마을과도 연결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기억과도 닿아 있었다.
기억을 존중하며 현재를 입히다
기존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처마 밑 목재들은 닦아내고 곰팡이를 벗겨낸 뒤 방부제를 칠했다. 창틀은 모두 떨어져 있었지만, 오래된 창문살 하나를 찾아 보수했고, 틀에 맞는 유리를 새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부엌은 전면적으로 손을 댔다. 낡은 싱크대를 철거하고, 중고 가구점에서 구한 자작나무 상판을 올려 수납장을 짰다. 수도는 기존 배관을 따라 연결했고, 오수관은 직접 파이프를 구매해 연결했다.
방안의 단열도 큰 고민거리였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인 만큼, 단열재와 석고보드를 직접 설치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실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해졌다. 바닥은 폐목재를 다듬어 깔았고, 그 위에 단열재와 데코타일을 얹었다. 가구는 대부분 직접 만들거나, 버려진 것을 손질해 재사용했다.
이 집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돈보다 시간과 애정이었다. 완벽한 집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성장하는 집. 벽에 페인트 자국이 남고, 손잡이가 삐걱거리더라도 괜찮았다. 그것이 이 집의 ‘지금’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삶과 집, 함께 다시 살아나다
작업을 시작한 지 9개월, 마침내 집은 한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새벽이면 마당에 서리가 내려앉고, 낮에는 부엌 창을 통해 햇살이 스며들었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손수 만든 테이블 위에 따뜻한 차를 올려두는 그 순간. 이 집은 더 이상 허물어진 집이 아니었다.
처음엔 집을 살린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이 집이 나를 살린 것이었다. 지쳐 있던 마음, 멈춰 있던 삶의 리듬이 집과 함께 조금씩 회복되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걸 왜 했어요? 돈도 많이 들었을 텐데.” 나는 웃으며 말한다.
“벽돌 한 장부터 다시 살아보려고요. 집도, 나도.”
이제 이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자, 나의 치유기다. 무너졌던 집은 다시 서고, 그 위에 나의 하루가 쌓여간다.
마무리하며
무너졌던 집을 다시 세우는 일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었다.
그건 기억을 복원하는 일이었고, 나 자신을 붙잡아주는 과정이었다.
하루에 벽돌 하나라도 쌓자고 다짐했던 그 시작은, 시간이 흐르며 단단한 벽이 되었고, 결국 ‘살 수 있는 집’이 아닌 ‘살고 싶은 집’이 되었다.
처음에는 벽이 무너져 있었고, 문이 닫히지 않았고, 지붕이 새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너져 있던 건 내 안의 자신감과 에너지였는지도 모른다.
하나씩 고치면서 집이 달라지게 시작하자, 내 삶도 서서히 균형을 찾아갔다.
기술이 없어서 더디고, 자재가 부족해서 우회로를 찾고, 날씨에 따라 멈추는 날도 있었지만, 결국 이 집은 나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쌓은 벽돌 위에서 나는 안심하고 숨을 쉬고, 웃을 수 있다.
무너졌던 집이 내 삶을 다시 세워준 것이다.
이 집은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내 집’이다.
혹시 당신 앞에도 허물어진 무언가가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처음부터 멋지게 쌓을 필요는 없다.
단 하나의 벽돌부터, 단 하루의 시간부터 시작해도 된다.
그렇게 다시 쌓아간다면, 어느새 그 공간은 당신의 쉼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집은,
잊혔던 시간을 꺼내어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든 기억의 집이자,
삶을 조금씩 회복해 가는 연습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벽돌을 한 장씩 더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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