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백만 원으로 시작한 폐가 살리기,
지금은 누구보다 따뜻한 내 집입니다”
단돈 100만 원, 모든 것은 그날 시작됐다
지친 도시의 삶에 가슴 한쪽이 무거웠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동호회에서 ‘폐가 100만 원에 팝니다’라는 글을 보게 됐다. 헛웃음이 나왔다. 요즘 세상에 집값이 100만 원이라니. 가벼운 호기심으로 클릭한 그 글이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사진 속 집은 한눈에 봐도 폐허였다. 지붕은 일부 무너졌고, 창은 깨졌으며, 안엔 먼지와 거미줄이 그득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하게 마음을 잡아끄는 느낌이 있었다. ‘이 집, 나한테 뭔가 말 거는 것 같아.’
100만 원. 도시에서는 휴대전화 하나 바꾸면 사라질 금액.
그렇다면, 단돈 100만 원으로 집 한 채를 ‘빌린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나는 그렇게 이 낡은 집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잔금을 입금한 다음 날, 나는 낡은 등짐 하나를 메고 그 집 앞에 섰다.
그리고 스스로 말했다.
“하나씩 정비해 보자. 내 손으로.”
망치 하나, 고무장갑 한 켤레로 시작된 정비의 시간
정비는 철거부터 시작됐다.
먼저 깨진 유리를 걷어내고, 썩은 문짝을 떼어냈다. 안방에는 오래된 장롱과 가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습기와 곰팡이로 엉망이었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분리수거장에 실어 날랐다.
가장 먼저 체감된 변화는 ‘냄새’였다.
곰팡내가 빠지고, 햇빛이 들어오니 집이 숨을 쉬는 듯했다. 쓸고 닦고, 바닥에 쌓인 먼지를 물걸레로 여러 번 닦아냈다. 그러자 마룻바닥의 나뭇결이 다시 드러났고, 그것만으로도 공간은 전보다 훨씬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없으니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기는 끊겨 있었지만, 인근 전기공사 업체에 자잿값만 드린다고 하니 기본 배선 점검은 도와주겠다는 사장님이 있었다. 수도는 얼어붙은 관을 교체했고, 부엌 싱크대는 재활용 센터에서 1만원 주고 가져왔다.
사실상 모든 작업은 손품과 발품으로 해결했다.
쓰지 않는 이불로 단열 커튼을 만들고, 창문은 비닐 커튼으로 임시 처리. 비가 오면 샌드위치 패널로 처마를 만들어보며 물막이 효과를 실험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점점 사람의 온기를 담아가기 시작했다.
집이 살아나자, 나의 일상도 살아났다
내가 가장 먼저 바꾼 공간은 부엌이었다.
먹고 사는 공간이 살아야 집이 집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반을 직접 짜고, 작은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로 밥을 지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릇을 씻을 물도 바가지로 퍼 날랐지만, 그 불편함도 왠지 즐거웠다.
그리고 마당 한쪽을 정리해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처음엔 잡초만 무성했지만, 괭이로 땅을 고르고 시금치와 상추 씨앗을 뿌리니 싹이 올라왔다. 매일 아침 흙을 밟으며 물을 주는 그 짧은 시간은 도시에서 10년 넘게 잊고 살았던 평화였다.
하루하루 정비하며, 나도 집도 회복되었다.
밤에는 무너진 벽을 바라보며, ‘이 벽을 내가 고쳤구나’ 하고 뿌듯해했고,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뜨거운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낡은 바닥을 걸을 때 나는 삐걱 소리.
그 모든 것이 ‘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집은 점점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찾아오면 “진짜 이게 그 100만 원짜리 집 맞아?”라며 놀랐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응, 내 손으로 고친 집이야. 내 손으로 만든 집이니까, 내 집이야.”
100만 원으로 시작했지만, 그 집은 나에게 ‘삶’을 줬다
사람들은 묻는다.
“진짜 가능해요? 단돈 100만 원으로?”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가능하다고.
대신 돈이 아니라, ‘시간’과 ‘손’이 필요하다고.
100만 원으로 시작한 폐가는 사실 ‘빈 캔버스’와도 같았다.
내가 붓을 들고, 색을 입히고, 터치를 더해가며 완성해 가는 집.
누군가는 못 들어올 공간이라 했던 그 집은 이제 내가 가장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
시간은 걸렸다.
완벽하지 않았다.
지금도 바람이 센 날이면 창문이 덜컥거리고, 단열이 부족한 방은 아침마다 쌀쌀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 집이 세상 어떤 집보다 따뜻하다고 느낀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택은 손으로 뭔가를 지어보는 것이다.’
이 집이 나에게 알려준 가장 큰 깨달음이다.
마무리하며
100만 원으로 시작한 폐가 정비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단순히 집을 고친 게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 삶을 정돈했고, 손끝으로 나를 다시 세워갔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집을 보며, ‘사람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품게 됐다.
도시는 빠르고, 편리하고, 세련됐지만 늘 어딘가 허전했다. 이 낡은 집에서는 불편한 것도 많지만, 마음은 그 어떤 때보다 충만하다. 단열이 완벽하지 않아 이른 아침이면 손이 시려도, 내 손으로 고친 창문을 열고 마당을 보면 그 모든 게 고마워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100만 원짜리 집, 그게 뭐가 되겠어?”
하지만 나는 말한다. “내가 살고, 웃고, 울고, 쉬는 집이면 충분해요.”
이 집은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도 고칠 곳이 있고, 앞으로도 천천히 손볼 곳이 많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싫지 않다. 오히려, 나를 닮아가는 그 속도가 좋아서 오늘도 망치 하나를 들고 다시 집을 살핀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걸 이 집이 보여줬다.
100만 원으로 시작한 폐가, 그 안에서 지금 나는
가장 내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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