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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폐가 리모델링 실전 사례

1,000만 원으로 시작한 시골 폐가 리모델링, 나는 이렇게 집을 살렸다

by 같이의-가치 2025. 6. 25.

“돈보다 용기가 먼저였다”

“시골 폐가가 내 집이 되기까지”

낡은 집 한 채에서 시작된 두 번째 인생


언젠가부터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 소음,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에서 본 ‘시골 폐가 리모델링’ 영상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며칠 밤을 새워 관련 사례를 찾아보고 전국 빈집 데이터를 뒤졌다.

1,000만 원으로 시작한 시골 폐가 리모델링


강원도 어느 외곽 마을. 지붕이 내려앉고 벽은 허물어진 폐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40년 이상 방치된 흙집. 감정가조차 없는 수준이었지만, 내 눈엔 잠재력이 보였다. 집값은 고작 300만 원. 남은 예산 700만 원으로 집을 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였다. 주변에선 “무모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어차피 가진 게 많지 않던 나는 도리어 담대해졌다. 그렇게 나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첫 망치질을 시작했다.


폐가가 말하는 진짜 현실과 마주하다

 

첫날 도착한 집은 말 그대로 ‘버려진 공간’이었다. 부서진 창틀, 들쑥날쑥한 기둥, 방 안 가득한 짐과 곰팡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하루에 장갑 네 켤레가 닳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지만 청소부터 시작했다. 집 안에 쌓인 생활 쓰레기와 동물 흔적을 치우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이게 과연 될까? 수없이 자문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지붕은 지역 목수의 도움을 받아 200만 원 선에서 최소한의 보강을 했다. 외벽은 회반죽으로 메우고, 도장 작업까지는 유튜브에서 보고 직접 시도했다. 화장실은 없었기에 정화조 설치부터 시작했다. 관련 업체에 견적을 맡기고, 수도 연결과 하수 배관까지 진행. 전기 배선 역시 배운 그대로 천천히 교체했다. 매일 저녁엔 유튜브로 전기 기초와 배관 구조를 공부하며 다음 날의 작업을 준비했다. 막막했지만, 조금씩 공간의 윤곽이 드러나는 게 느껴졌다.

이 과정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폐가는 단순히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보이는 것만 고쳐선 안 되고, 구조, 물, 전기, 난방까지 삶의 기본을 다시 세워야 했다.

 


삶이 머무는 집으로 바꾸는 과정


외장 수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실내 공사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난방 라인 공사였다. 바닥을 걷어내고 얇은 단열재를 깔고, 온수 배관을 연결했다. 보일러는 중고로 구해 직접 설치했다. 도배 대신 친환경 페인트와 나무 몰딩을 이용해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미닫이문과 헌 가구를 리폼한 테이블 하나로, 거실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방 한 칸은 작은 서재 겸 침실로 꾸몄다. 서점에서 직접 가져온 헌 책장을 재도색하고, 매트리스 하나 놓으니 그럴듯한 공간이 완성됐다. 부엌은 철제 조리대와 중고 전자제품으로 구성했고, 조명을 달고, 벽타일을 붙이며 실용성과 감성을 모두 살렸다.

마당은 흙먼지뿐이던 공간을 정리해 작은 텃밭과 테이블 하나가 있는 휴식 공간으로 바꿨다. 여름엔 상추와 고추, 가을엔 쪽파를 심었다. 아침에 텃밭을 돌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는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하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 리모델링은 내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되찾게 해줬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배움과 꾸준함으로 한 공간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 큰 성취였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총 소요된 비용은 1,180만 원. 예산보다 약간 초과했지만, 비교할 수 없는 삶의 만족을 얻었다. 돈보다 값진 건 ‘내 손으로 만든 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느리지만 풍성하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내가 손 본 곳에서 잠들고 일어난다는 감각은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단순히 ‘공간’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지금은 그 집에서 첫해를 보내고 있고, 차츰차츰 손볼 곳을 더하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또 다른 폐가를 리모델링해 작은 공유 공간(책방, 스테이 등)으로 만드는 것. 이 집처럼 누군가에게 시작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시작은 1,000만 원, 그리고 망치 하나였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부딪치는 용기였다. 당신에게도 그런 꿈이 있다면, 이 이야기가 그 시작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마무리하며


1,000만 원으로 시작한 시골 폐가 리모델링.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도전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고생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 속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이 집을 살리는 일이 단지 벽돌을 쌓고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이 아닌,
나의 생활과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기에 선택은 더 신중했고, 행동은 더 절실했다.
직접 자재를 고르고, 스스로 벽에 바르며, 몸이 부서질 듯 고단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나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럴수록 집은 점점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창문을 교체하고, 지붕을 덮고, 싱크대를 달았을 때,
이 집은 더 이상 폐가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발길이 멈춘 채 방치됐던 공간은
다시 누군가의 삶이 자라고, 추억이 깃들 수 있는 집이 되었다.

1,000만 원이라는 금액은 생각보다 적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나는 돈이 많아서 이 집을 산 것이 아니라,
지켜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이 집을 고쳤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 집, 1,000만 원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값진 건,
제가 직접 손으로 이 집을 다시 살렸다는 거예요.”

한 장의 벽지, 한 줄의 전선, 한 번의 페인트칠 속에
내 땀과 마음이 스며든 이 집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삶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