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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폐가 리모델링 실전 사례

부모님 고향집을 되살리다: 정감 넘치는 시골 폐가 리모델링 실전기

by 같이의-가치 2025. 6. 25.

 

“추억은 지키고, 불편함은 덜었다”
부모님의 고향 집, 다시 살아난다!

 

시골 폐가 부모님 고향집 리모델링



버려진 고향 집, 마음속 풍경으로 다시 피어나다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도시에 살며 각자의 바쁜 일상에 쫓겨 살았습니다. 하지만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늘 이야기의 중심에는 부모님의 고향 집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 방학마다 찾던 그 집, 마당 끝 우물 옆 매실나무, 정겨운 초가지붕과 장독대, 낮은 창으로 비치던 햇살.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그 집에 가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고향 집은 ‘기억 속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집... 한 번만이라도 다시 가보고 싶구나.”
그 말이 가족 모두의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그 길로 우리는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시작했고, 폐가처럼 방치된 고향 집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문은 삐걱거리고, 마루는 썩어 꺼졌으며, 지붕 일부는 무너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우리 가족 모두의 눈빛에는 설렘과 아련함이 피어올랐습니다.

이 집을 다시 살려야겠다는 결심은 자연스럽게 내려졌습니다. 단순히 부모님을 위한 집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갈 뿌리를 지키고, 다음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가족의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억을 존중하며, 실용성을 더한 설계

 

리모델링은 단순한 인테리어 변경이 아니라 집의 구조와 쓰임새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화’를 기본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부모님의 연세를 고려하여 ‘안전’과 ‘편의’를 중심에 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건축사와 함께 집을 점검한 결과, 기둥과 대들보는 여전히 단단했지만 마, 창호, 지붕 등은 대대적인 교체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오래된 한옥 구조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단열 보강, 배수 공사, 전기배선 교체, 보일러 설치 등 필수적인 부분은 과감히 손봤습니다. 특히 화장실과 주방은 새로 신설한 배관을 통해 수도와 온수가 원활히 나오도록 시공했고, 전기온돌로 바닥을 따뜻하게 해 부모님이 겨울에도 불편 없이 지내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간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방 3칸에 부엌이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거실과 주방을 개방형으로 연결하여 채광과 환기를 개선했고, 안방 옆에는 작은 다용도실을 만들어 세탁기와 창고 기능을 함께 갖추도록 했습니다. 마당에는 조경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이 좋아하는 국화, 해바라기, 매실나무를 새로 심었고, 오래된 장독대는 깨끗이 다듬어 멋진 정원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정감 있는 집을 위한 디테일의 힘

 

이번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은 ‘집의 감성’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도시형 전원주택처럼 새롭고 반듯한 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억과 이야기가 스며 있는 공간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문짝, 창살, 기둥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들였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어릴 적 걸터앉아 쉬셨다는 나무 평상은 손질만 하고 그대로 두었고, 외벽 일부는 황토벽을 복원해 옛 느낌을 살렸습니다. 도배 대신 한지를 손으로 바르고, 창문에는 전통 창호지를 발라 자연광이 은은하게 스며들도록 했습니다. 집 안에는 어머니의 오래된 자수 액자, 아버지의 손때 묻은 나무 시계, 우리가 어릴 적 사용하던 책상 등을 다시 배치해 공간 곳곳에 추억의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구성했습니다.

지붕은 현대식 자재로 교체하되 색상은 옛 기와색을 그대로 살렸고, 조명도 과하지 않게 노란빛의 전구를 사용해 저녁이면 마치 영화 속 집처럼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기술적 요소와 감성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고민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만의 집’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상, 그 안에 깃든 감사와 평화

 

공사가 끝나고 부모님을 고향 집으로 초대한 날, 어머니는 현관 앞에서 몇 분간 말을 잇지 못하셨고, 아버지는 대들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 집, 그 시절보다 더 따뜻하네.”
그 한마디가 모든 수고를 잊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이 집은 단지 휴식처가 아닙니다. 주말이면 우리 세 남매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고, 마당에서는 손주들이 깔깔대며 놀고, 어머니는 직접 기른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시곤 합니다. 이 집은 단절된 시간을 다시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고향 집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리모델링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세대 간의 기억을 이어주는 작업’이자, ‘사라져가는 삶의 방식에 대한 예의’였으며,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다시 회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집은 우리의 뿌리가 되는 공간으로, 누군가에게는 휴식처로,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을 꺼내보는 서랍처럼 남을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낡고 조용했던 부모님의 고향 집은 이제 다시 살아 있는 공간이 되었다.
처음 마주했을 땐 무너진 기와, 쓸쓸한 마당, 창문 너머 어두운 방 안이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졌지만,
그 안엔 여전히 우리 가족의 웃음과 기억이 숨 쉬고 있었다.

리모델링은 단순히 오래된 공간을 고치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조각들을 되짚고, 잊고 있었던 온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무너졌던 벽을 다시 쌓으며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상상했고,
기름때 낀 부엌을 닦아내며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된장찌개 냄새를 떠올렸다.

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집에 부모님을 처음 모셨을 때,
아버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감정을 전해줬다.
어머니는 오래된 감나무 아래에 서서 “여기 그대로 있었네…”라며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내가 이 집을 살리기로 결심한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선택이었는지를 다시 실감했다.

이제 이 집은 우리 가족이 다시 모일 수 있는 중심이 되었다.
명절이면 삼 남매가 모이고, 손주들이 마당을 뛰어다니며 웃고,
예전처럼 감이 익어가면 다 함께 따서 곶감을 만들 예정이다.

버려졌던 고향 집을 되살린다는 건,
단순히 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뿌리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비어 있던 시간 위에 추억을 덧입히고,
삶의 이야기를 다시 그려낸 이 집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장소’가 아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정감 넘치는 고향이다.